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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이론

Heinz Kohut (1913-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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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거듭남 작성일06-04-16 21:00 조회4,6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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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헛의 심리학은 크게는 대상관계 이론 모델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 심리학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자기self의 문제를 중심적인 문제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대상관계 이론가들이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코헛은 그 대상과 관계를 맺는 주체로서의 자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 자기가 건강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한 대상관계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불건강한 자기가 곧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문제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코헛은 그의 연구 초기에 자신의 연구가 좁은 의미의 자기애적 성격 장애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점차로 자기의 장애라는 문제가 어떤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신병리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건강한 자기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코헛은 이 건강한 자기를 응집적cohesive 자기라는 말로 부른다. 이 말은 스스로의 정서 상태를 안정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파편화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는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응집력을 가진 자기를 형성했으나, 온전한 응집력은 갖지 못한 어중간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한편으로는 실제로 정신분열과 같은 심각한 해체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상태에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만성적으로 막연한 자기 파편화의 불안에 시달리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이 응집적 자기는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것이며, 또한 어떤 이유로 이 과정이 방해받는 것인가?

자기의 발달과정

신생아는 신체와 정신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파편화되어 있다 또는 자아의 핵 요소들로서 존재로서만 놓여 있지만 본래적으로 전능감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환상을 어머니와 자연 발생적으로 융합이 되어있으므로 해서 엄마의 배려와 부드러운 돌봄으로 인하여 차츰 파편화된 자기(fragmented self)는 응집력을 갖는다.

유아의 필요 충족을 예민하게 감지(투사적 동일시)하는 엄마의 돌봄으로 초기에 느낄 수 있는 전능감을 만족스럽게 경험하므로 자신은 완전하며 전능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애적 평정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약1~ 3개월 정도 지나면 엄마와 아기와의 자연 발생적으로 확고하게 융합 되었던 상태가 느슨해지면서 엄마는 아이의 욕구 충족을 완벽하게 제공해 주지 못하고 그러므로 해서 유아는 자기애적 평정 상태가 깨지고 만다. 

유아는 이 시기에 자기애적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첫째로 나타나는 것이 과대적이고 과시적인 자기 의 발달을 시키고, 그 후로 부모를 이상화하여 감탄스럽고 전능한 자기 대상(grandiose andexhibitionistic self)으로 만든다.

자기대상(self-object)이라는 것은 부모를 자신의 일부분 또는 자신의 확장으로서 경험하고 이러한 대상관계는 유아적인 관계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유아의 자기애적 평정은 바로 이 자기대상에 의존되어 있다. 이렇게 자기의 발달은 자기와 타인 즉 자기대상이 되는  관계부터 시작되는 과정이다, 이 발달 시점에서의 장애는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s) 로 남게 되며 모든 정신 병리의 근원적인 원인이 된다.

부모는 아이의 건강한 자기가 발달하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의 반응을 보여야 한다.
첫째로 아이의 과대주의와 과시주의의 욕구로 아이는 자신이 대단한 존재이며, 그러한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주목 받고 관심과 인정과 찬사를 받고자 하는 부모는 이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과 찬사를 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과대주의와 과시주의의 욕구가 충족되는 경험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애적 욕구가 충족되는 동안 아이의 자기는 힘 있고 자신 있고 가치 있는 존재로 경험되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초기의 응집력이 없던 자기는 차츰 응집력을 지닌 자기로 변형된다. 또한 이런 경험과 함께 원시적인 과대주의와 과시주의는 차츰 길들여지고 조절되고 보다 현실적인 요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자기감 또는 자존감으로 성숙해 간다. 이러한 건강한 자존감의 토대 위에서만 인간은 타자들과 성숙한 대상관계를 맺을 수 있다. 즉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능력은 타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능력의 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과대주의와 과시주의가 공감적인 반응을 받지 못하면 자기애적 상처가 생기게 되고 고착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 자기애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음으로 해서 자존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깊은 열등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하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자기애가 문제가 아니라 발달하지 못하고 고착되어 있는 유아적 자기애가 문제인 셈이다.

둘째로 아이가 이상화 시킬 수 있도록 상호작용으로 인해 허용되면 아이는 부모를 이상화하고 그 이상화된 대상으로부터 보호받고 긍정 받는 경험을 통해서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결함과 좌절에 직면해서 무력감과 공허감을 느끼지 않고 강한 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아이는 이런 이상적인 자기대상들과의 연합이 유지되는 한, 강하고 충만하고 안전함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이 이상화된 부모상(idealized parent image)과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고, 차츰 그 이상화된 부모상을 내면화하여 자기 이상 으로 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인생을 살면서 잠재적인 능력으로 특별한 기술과 능력을 발휘 할 수 있고 보다 가치 있고 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상화 시도가 허용되지 않거나 이상화가 된 뒤 이상화가 좌절 될 때 자아 이상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의 인생을 목적의식 없이 낭비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애의 병리 6가지 측면

1.유아적 자기애

자기밖에 모르며 타인의 입장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란 없다. 그 자체의 고유한 권리를 지니고 자체의 감정과 생각을 지닌, 그래서 그와 나와 너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타자는 없고, 그에게서 타자들이란 단지 자신의 과대적이고 과시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본래 유아적 자기애의 특징에 속한 것으로서 그 유아적 자기애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본래 자기중심적이어야 할 시기에 충분히 자기중심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했거나, 아니면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해 적절한 좌절을 통하여 현실인식을 발달시키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 과대주의와 과시주의

과대주의와 과시주의는 좀 더 밑바닥에 놓여 있는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어 작용이다. 이러한 사람은 과대망상과 무한히 크고 위대한 자신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힘으로 해서, 실상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과 무가치감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과 찬사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찬사를 받기 위해서 자신을 과장하게 되고 과대 포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찬사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심한 무가치감과 우울한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애드벌룬 인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늘 애드벌룬처럼 공주에 떠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아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마치 바람 빠진 애드벌룬처럼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3. 낮은 자존감
건강한 자존감이란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고 스스로 인정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남들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자존감이 없기 때문에 남들의 관심과 인정 그리고 찬사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허약한 자존감은 쉽게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 격노하게 만든다. 흔히 저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라고 표현 하는 것은 그 사람이이 자존감이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반응이다. 이러한 자기애적 격노(narcissistic rage)는 그의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이 격노는 정당한 감정으로서의 분노(anger)와는 다르다. 분노의 표현과는 달리 격노는 자기의 파편화에 해당된다. 분노는 자제력을 가지고 자신이 그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을 통해서 목적한 바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격노는 자제력을 잃고 자신과 모두에게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자기 파괴와 자기 포기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은 때로 거만하고 오만한 태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자기 중요성(self importance)또는 자격감(sense of entitlement)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모두 타자를 향해 진정으로 자신을 개방할 수 없는 낮은 자존감에 대한 방어적 표현들에 지나지 않는다.

4. 허약한 신체감
코헛은 자기애적 성격장애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건강 염려증적 몰두에 대해서 말한다. 건강하고 힘 있는 자기의 느낌을 유지할 수 없는 자기의 장애는 건강 염려증적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고 느끼고, 공연히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현상을 포함해서 늘 신체의 여러 부분들이 아프다고 생각되는
염려가 바로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의 핵심에는 응집적 자기를 이룩하지 못하고 파편화되기 쉬운 자기의 취약성의 문제가 놓여 있다.
만성적이고 막연한 신체에 대한 허약감은 무엇보다도 무력한 자기감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무력한 자기감은 알코올이나 마약 또는 성에 중독될 수 있는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정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무능력은 자신의 정서
상태를 기분 좋은(high)상태로 유지시켜 줄 수 있는 무엇인가에 의존하게 되고, 따라서 수많은 중독자들을 만들어내는 심리적 원인이 된다.

5.수치심
수치심은 굴욕감, 열등감 등과 관련된 자기애적 상처를 반영하는 기능을 갖는다. 많은 경우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수치스럽게 하거나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서 부모가 수치심을 이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코헛은 수치심을 잘 느끼는 많은 개인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인 야망을 갖는 과시주의적인 사람들임을 관찰한다. 수치심은 사실상 자기 이상을 형성하지 못한 자기애적 상처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6.시기심
코헛은 이 시기심 또한 자기애적 상처의 결과로 본다. 자신이 존중 받는 경험을 통해서 자기 안에 좋고 긍정적인 가치를 형성하지 못할 때, 이 상처 입은 자기는 자기 파괴적이 되어 모든 선한 것을 공격하는 시기심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의 우선순위의 문제를 떠나서 이 시기심은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그 상처로부터 치유 받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파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치유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치료자가 좋은 사람으로 경험될 때, 바로 그 좋은 경험이 환자의 시기심을 자극하고 결국은 그 좋은 관계를 망쳐 버리게 하는 요소가 바로 시기심인 까닭이다. 코헛이 말하는 자기애의 병리는 이상의 여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들은 다시금 우월한 자기애적 형태와 열등한 자기애적 형태로 재분류될 수 있다. 즉, 이 병리는 우월한 형태를 띠고 나타날 수 있으며, 정반대로 열등한 형태를 띠고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이스너는 이 두 형태의 자기애적 병리를 도표로 보여주고 있다.

-우월한 자기애적 형태-
과대주의, 자격감, 과시주의, 완전주의, 전능감, 자만심, 의기양양함, 경멸, 우월감, 상처 입을 수 없다는 느낌, 타자에 대한 가치절하, 자기 충족, 고립

-열등한 자기애적 형태-
우울, 무가치감, 수치심, 결함을 가졌다는 믿음, 부적절성/성적 무능, 굴욕감, 낮은 자존감, 시기심, 열등감, 자기애적 취약성, 이상화, 찬사 받으려는 욕구, 의존

중독성격의 특징

민감하게 경험되는 편만한 공허감. 우울증. 자기애적 전이가 무너질 때 자신은 전적으로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 정서가 무디다는 느낌을 치료자 에게 알리려고 한다.
아무런 흥미거리가 없다. 주도성의 결여. 이와 유사한 그 밖의 많은 호소들은 고갈된 자아 상태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자아는 원초적 과대적자기의 비현실적인 주장 또는 자존감과 자기애적 영역에서 외부로부터 다른 형태의 정서적 지원을 해 주는 강력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강열한 갈망에 대해 스스로 담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 성적인 영역에서 ? 성도착적 환상, 성교에 대한 흥미 결핍
☞ 사회적인 영역에서 ? 직무장애, 의미 있는 관계형성을 하거나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는 무능력, 비행 행동
☞ 두드러진 성격특성 ? 유머부족, 다른 사람들의 욕구나 감정에 대한 공감부족, 비례 감각의 결여, 통제되지 않는 진노로 공격하려는 경향성, 병리적 거짓말, 지속성의 결여, 성숙한 포부를 갖지 못함, 자신에게 비현실적인 요구를 부과하는 모습, 타인의 갈채에 지나치게 의존, 빈약하거나 질이 낮은 대상관계, 자신에게 특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함, 끊임없는 완벽추구, 다른 사람들을 염려하거나 공감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력.
☞ 정신 신체적 영역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건강염려증적 몰두, 다양한 신체기관 체계의 무력 증세

만연된 건강염려증에 몰두하는 것 같던 환자의 증상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으며(외부로부터 찬사를 받거나 환경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는 갑자기 자신이 살아있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주도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세상 안에 깊고 활기 있게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으로 잠깐 동안 지속될 뿐이다. 그것들은 불안한 흥분의 원인되기 쉽다. 그것들은 불안을 일으키고 만성적인 지루함과 수동성의 느낌을 갖게 한다. 거기에는 자기애적인 취약성이 불안한 흥분에 의해 야기된 불편함과 함께 자신의 고조된 즐거움을 곧 다시 가라앉히고 되찾고 활기 있는 행동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 코헛은 우울증을 3가지로 나누었다
전언어적 우울증: 아주 초기 외상과 관련 되어 무감정, 죽은 것 같은 느낌, 만연된 격노를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공허한 우울증: 부적절한 반영과 이상화된 자기대상 반응의 결여로 인한 것으로서 자존감과 활기의 고갈을 수반한다.
죄책감 우울증: 이상화할 수 있는 사람을 자기대상으로 갖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서, 비현실적으로 강화된 자기-비난과 자기-거부. 이런 형태의 우울증은 이상화된 자기대상과의 충분한 융합 경험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다.

자기 심리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합류점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관계적 종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는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의되고 이해된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 전제는 그 분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지음 받았으며, 그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초월해 계시는 전적 타자로서 존재하시며, 우리와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존재와 삶 자체를 관계적 모체로부터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세계관은 그 근원적인 차원에서 코헛의 자기심리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전능한 창조적 능력으로 만물을 지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읽는다.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인간 안에 자신의 가치를 불어넣으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며 감탄하시고 칭찬하시며 복주신 창조 이야기는 코헛이 말하는 자기의 탄생과정에 대한 서술로도 읽을 수 있다. 아기의 자기가 자신을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긍정해 주며 찬사를 보내는 부모를 경험함으로써 그 탄생과정을 시작하듯이, 인간의 첫 경험 또한 창조주 하나님의 긍정적인 눈빛과 찬사가 담긴 축복이었다. 이것은 비단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만 해당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피조 세계, 인간과 피조 세계,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진실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그대는 나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감탄어린 소리를 발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性이 철저하게 관계적 존재임을 확인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자기 대상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러한 인간을 위한 자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속서을 말해 준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양육받고 강건해지고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성장과정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단순하고 어린 아이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자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가 계속해서 보여 주고 있는 인간의 타락과 원죄에 관한 이야기는 자기 대상으로부터의 갑작스런 단절과 상처 입은 자기가 드러내는 병리적인 모습과 관련된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고, 자신의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은 자기애적 병리가 드러내는 교만하고 거만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문제의 근원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창세기가 증언하는 관계의 파괴는 인간의 교만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코헛은 관계 파괴의 원인이 자기 대상의 실패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원인론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결과와 또한 파괴된 관계의 회복 과정에 대한 서술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존재한다.
  타락에 따른 직접적인 인간의 반응은 수치심과 공포였다. 이것은 어린 아이의 과시주의가 반영되지 못한 채 노출되었을 때 느끼는 첫 반응이기도 하다. 타락의 두 번째 반응은 책임의 전가였다. 아담은 하와에게 그리고 하와는 뱀에게 각각 그 책임을 전가했다.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해서 말한다면, 이들은 각각 투사를 사용하여 상처 입은 자기가 느끼는 수치심과 공포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어적인 투사는 점점 더 편집적인 체계를 형성하게 되고 거기에는 의심과 박해 불안, 그리고 증오의 분위기로 가득하게 된다. 인간의 자손은 뱀의 머리를 칠 것이고, 뱀은 인간의 뒤꿈치를 물 것이며, 하와는 해산의 진통을 겪게 되고 땅은 엉겅퀴를 낼 것이라는 저주 안에 담긴 내용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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